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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Culture

어디에도 속할 수 없었던 이방인 <그녀가 떠날 때>..Die Fremde(When we leave)


드라마/119분/독일/15세 관람가
감독: 페오 알라다그(Feo Aladag)
출연: 시벨 케킬리, 데리아 알라보라, 셋타 탄리오겐등



Synopsis


아무 말 없이 길을 걷던 한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한 아이... 갑자기 총을 꺼내들어 여자를 겨누는 남자...

터키 이스탄불에 살던 우마이(시벨 케킬리)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어린 아들 쳄(니잠 실러)과 함께 독일에 있는 친정을 찾는다. 갑작스런 딸의 방문에 대한 반가움도 잠시 뿐, 남편과 같이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는 아버지. 그리고 황급히 거짓말로 둘러대는 어머니..
우마이는 어린 아들과 함께 이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겠노라고 식구들에게 이야기하지만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아버지는 우마이에게 돌아갈 것을 요구한다. 명예와 평판을 중시하는 터키의 전통 가치관속에 이혼을 절대 받아 들일 수 없던 아버지는 다시 돌아가서 살던지 아니면 양육권이 남자에게 있으니 아이를 보내라며 윽박지른다. 강제로 아들 쳄을 뺏길 위험에 처하자 우마이는 경찰에 연락을 하여 보호소로 옮겨지게 된다. 하지만 그 곳까지 찾아와 협박을 하는 친오빠와 어딜 가던지 손가락질을 받는 우마이의 가족들..
자신의 삶을 찾고 싶었던 우마이는 새로운 직장에서 독일 남자 스티브(플로리안 루카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삶과 아들 쳄의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다시 새로운 곳으로 떠나려 한다. 
집안의 수치가 된 우마이를 절대 받아 들일 수 없는 아버지는 결국 결심을 내리는데..

명예살인(Honor Killings)

영화 <그녀가 떠날때>는 실제로 독일에서 상당히 문제가 되고 있는 '명예살인(Honor Killings;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이 딸이나 오누이를 살해하는 것. 시집을 떠나거나, 가문이 인정하지 않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거나 하는 이유등)을 재조명하고 있다. 가문의 명예를 떨어트린 여자를 가족이 살해하는 것이 응당한 댓가를 치루는 것이라는 인식.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하며 덮어주고 있는 터키의 문화. 이 말도 안되는 가치관이 정당하다고 받아 들여진다는 것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였다.

이 영화는 2005년, 베를린 거리에서 남동생에게 총살을 당한 하툰 시뤼퀴 사건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는데, 제작, 연출, 시나리오, 감독을 맡은 페오 알라다그(Feo Aladag)는 성에서 알 수 있듯, 터키계 독일 영화인 쥘리 알라다그와 결혼하여 남편 성으로 바꾼 오스트리아 출신의 배우이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 15년 전부터 일어난 사건들을 모두 참조해 개연성 있는 픽션을 만들었다. 계기는 7년전, 오스트리아 앰네스티 인터네셔널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 캠페인 공인 광고를 만들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는데, 그 일이 끝난 후로 풀리지 않는 의문과 분노가 남아 있었다. 당시 명예살인이 미디어에서 자주 보도가 되던 시기였다. 명예살인 사건들은 심리, 사회적 매카니즘, 과정등이 비슷하다. 가해자와 피해자, 어느 특정 민족 종교에 한정 시켜 가둬두는게 싫었다. 모든 인물이 심리적 분열 상태를 겪으며,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억압 속에 살고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실제로 영화는 초반과 중반까지는 무슬림 문화권의 남성 우월주의와 가부장적 가정에 대한 모습을 많이 보여준다. 아버지 말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가족들과 시집을 떠나온 우마이를 이유도 물어보지도 않은체 '걸레, 창녀' 등으로 부르면서 손가락질 하는 이웃들, 그런 우마이 때문에 파혼의 지경에 이르는 동생, 그 결혼을 성사 시키기 위해 돈을 더 건내는 아버지(이슬람 문화권에서는 결혼때 신부쪽에서 신랑집에 돈을 준다고 한다.)등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문화적 차이를 보여준다. 하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가족애와 전통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고민하는 아버지, 마지막 결정 앞에 눈물을 보이는 큰 오빠등은 감독이 무조건 특정 민족의 종교를 무자비한 살인 종교로 몰아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결국 우마이가 다른 남자와 만나는 것을 본 아버지는 우마이를 살해할 것을 아들들에게 지시한다.

Die Fremde(이방인)


원제는 'Die Fremde' 로 '이방인'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영화를 보는 중반부쯤 되면 그 뜻이 다른 나라에 사는 이방인을 가르키는 말이 아니라 너무나 다른 문화권 속에 갈등하며 결국은 가족에게도 세상에도 속하지 못하는 우마이의 모습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 속 우마이는 웃는 장면이 거의 없다. 언제나 긴장해 있고, 고민하고 슬퍼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스티브와 함께 있을때 그녀는 비로소 웃게 된다. 그와 함께 새로운 삶을 꿈꿨을 그녀지만 가족들에 대한 이해를 바랐고,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원했던 그녀는 동생의 결혼식에도, 사탕 축제에도 자신을 반기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가족들을 찾아간다. 하지만 상처만 받고 돌아오는 우마이.. 이 사탕 축제때 친정을 찾아갔던 우마이는 문전박대를 받고 돌아가고 그 모습을 창에서 바라보던 아버지는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우마이를 보고 명예살인을 결심한다.


영화는 알듯말듯한 장면들을 몇번 보여주는데 그 중 초반에 나오는 장면 중 우마이가 흰 옷을 입고 다리를 벌린채 누워 있는 장면이 나온다. 분명 아이에 관련된 장면인데 그 다음 별 설명이 없이 그냥 넘어 갔지만, 그 장면은 우마이가 시집을 떠나기 위해 둘째를 낙태하는 장면이였다. 병원에서 나왔을때 친구가 아팠냐고 물어보는 장면과 그 후 집에 돌아와서 오후에 다녀온 곳에 대해 가족들이 물었을때 아들 쳄이 다른 곳에 갔었다며 이야기를 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된다.
또 친정 아버지가 터키로 가 어느 노인의 집을 방문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아마 그의 아버지일 것이고,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결정을 내릴 것에 대한 장면을 보여준다. 



영화 속 우마이와 가족, 우마이의 주변과 가족의 주변은 서로 철저하게 상반된 문화를 보여준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우마이는 독일의 개인주의를 그대로 보여주는데, 자신을 위협하는 가족으로 부터 보호 받기 위해 경찰에 신고하는 장면과 가족의 의사와 끝까지 반대되는 입장에 서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살아가려는 모습들은 이슬람 문화권의 가족과 시종일관 마찰을 빚는다.
그녀의 주변은 그녀를 응원하며 직장과 잠깐 동안 쉴 곳을 제공해주는 친구 아티페와 가족을 그리워하는 우마이를 위해 우마이의 친정을 찾아가 설득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신의 이름을 들먹이지 말라."며 일침을 가하는 직장 상사 굴, 그녀를 위해 사랑을 쏟아 주는 스티브등 새로움에 대해 열려 있는 주변을 보여주는 반면, 우마이의 가족들 주변은 언제나 수근거리고, "걸레 같은 누이를 두었다."며 비아냥 거리는 이웃들, 걸핏하면 뺨을 때리는 가족들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려는 그 작은 행복 조차 허락되지 않는 문화가 있다는 사실에 영화가 끝난 뒤에 놀라움과 함께 마음이 무거웠다. 
 
빛나는 연기.. 시벨 케킬리(Sibel Kekilli)


주연 배우 시벨 케킬리의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마치 그녀의 삶을 대변하는듯 했다. 데뷰작이였던 <미치고 싶을때, 2004>에서도 <그녀가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강제 결혼, 명예 살인이 배경이 된 영화였는데 그 영화가 황금곰상을 받으면서 하루 아침에 스타가 됐다. 이번 영화 역시 그녀이기에 가능했던 영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슬람 여성 인권 기구인 'Terre des femmes' 를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케킬리는 <그녀가 떠날 때>로 독일비평가협회, 저먼필름어워즈,트라이베카필름페스티벌 등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Die Fremde... When we leave... 그녀가 떠날 때

제목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을까? 영화뿐만 아니라 음악, 간판등등 타이틀이라는 것은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신중하고 또 많은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원제는 '이방인' 이라는 뜻이고, 영어로는 '우리가 떠날 때' 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녀가 떠날 때' 라는 제목으로 개봉이 된다. 처음에 <그녀가 떠날 때> 라는 제목과 포스터만 봤을때는 자신의 삶이나 존엄성을 찾기 위해 떠나는 스토리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왜 제목을 <이방인> 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었다.

이 영화가 말하려는 바는 그녀가 자신의 삶과 존엄성을 찾기 위해 떠난다는게 아니라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외로운 사투를  벌일 수 밖에 없는 이방인이라는 점이였다. 제목에 대한 아쉬움이 깊게 남는 영화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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