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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Culture

왜 숀팬인가? 아버지를 위한 노래(This must be the place)

by voice_recipe 2012. 5. 1.

 

 

 

제목: 아버지를 위한 노래(This Must be the Place)

감독: 파울로 소렌티노

출연: 숀 팬, 프란시스 맥도맨드, 쥬드 허쉬

음악: 데이먼드 번

장르: 드라마  / 118분 

개봉: 2012년 05월 03일(씨네큐브 단독 개봉)

 

 

우리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 인생은 이럴 거야.’라고 말하는 나이에서

‘인생이 그런 거죠.’라고 말하는 나이가 되어가죠.

 

영화를 볼 때 나름의 규칙을 두고 영화를 고르게 됩니다. 가장 먼저는 영화가 어떤 분위기로 흘러가는지를 트레일러를 보고 판단하게 됩니다. 총과 칼이 난무하는 액션물인지, 숨막히는 반전이 거듭되는 추리물인지, 잔잔한 일상이 담긴 드라마인지, 무조건 죽이고 보는 호러물인지등을 가장 먼저 구분 짓습니다. 물론 영화의 장르가 모든 것을 말해주진 못합니다. 액션 속에도 늘 사랑은 존재하고, 죽음도 존재하는 것 처럼 말이죠. 하지만 주 테마가 무엇인지는 저에게 영화를 선택하는 가장 중요한 요건 중 하나입니다.

저는 보통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는 드라마를 좋아하는데 이 요건만 맞는다면 배우가 누가 나오는지, 어떤 감독이 만들었는지 보다 더 중요하게 어떤 흐름으로 영화가 진행되는지를 가늠해보고 영화를 선택합니다.

사실 영화 중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것은 명 배우와 명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가장 어려운 연기가 넘치지 않으면서 일상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감동을 주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숀팬이라는 배우는 저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속에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넘치지 않으면서 가장 일상적인 모습으로 연기를 하며 감동을 주는 배우.' 그의 연기가 특별하다거나 그가 빛난다거나 하는 수식어로는 잘 설명이 안되는 배우. 그는 그런 자연스러움과 자신이 고른 캐릭터와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특별함을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그 숀팬의 오랫만의 작품. 그것도 독립 영화 성격을 물씬 풍기는 '아버지를 위한 노래(This must be the place)'

 

INTRO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 의 원제목인 'This must be the place' 는 이 영화 음악 감독이자, 극 중 셰이언(숀팬)의 오랜 음악 친구 데이비드 번을 연기하는 데이비드 번(원래 이름 사용)의 노래이다. 그는 영화에 자주 화자되는 '토킹 헤드' 의 리더 보컬이자 작가, 영화 제작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이 자신의 노래와 노래 제목을 영화에 사용하는 것과 영화에 출연해 연기를 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을때 당황했다고 한다. 자신의 노래도 그렇지만 자신을 연기하라니.. 하지만 극 중 셰이언과 그의 짧은 만남은 꽤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숀팬과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의 인연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숀팬이 칸 영화제 심사위원이였고, 감독이 <일 디보>로 심사위원 상을 수상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숀팬이 감독의 연출력에 대한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작품을 함께 하고 싶다는 제안을 하고, 파울로 소렌티노 감독은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숀팬에게 건냈습니다. 독립 영화에 세계적인 배우가 출연을 결심하리라 기대하지 않았던 감독이 하루만에 그의 자동응답기에 담긴 숀팬의 긍정적인 답변에 처음에는 의심을 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그를 만나 그와 영화 속 캐릭터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확신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에큐메니컬(ecumenical)' 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에큐메니컬' 상은 삶의 깊이 있는 성찰과 뛰어난 예술성이 돋보이는 작품에 수여 되었던 상으로 그 어떤 상보다 이 영화에 어울리는 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SYNOPSIS

 

 

 

' 시커먼 옷으로 몸을 두르고 펑키 헤어에 가부키 화장 같이 얼굴에 떡칠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늘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남자. 길을 가다 이런 모습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한번쯤 뒤를 돌아보게 되는 모습을 한 이 남자는 한때 믹 재거와 공연을 했을 만큼 유명한 락 스타 '셰이언(숀팬)' 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노래를 듣고 두명의 청년이 자살한 사건 이후 음악을 접고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를 변함없이 사랑해 주는 아내와 함께 조용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차에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게 되고, 30여년 만에 아버지를 뵈러 뉴욕으로 간다. 그곳에서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게 되고, 아버지가 유태인 수용소에서 자신에게 모욕감을 준 나치 전범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그를 찾아 떠나게 되는데...'

 

'숀 팬' 이기에 가능한 영화

 

영화는 초반에 잔잔한 일상을 그려나가다 아버지의 부고를 접하게 된 후 로드 무비로 전화이 됩니다. 나치 전범을 찾기 위해 미국의 전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두명의 청년이 자살한 사건 이후 성장이 멈춰버린 셰이언의 성장통을 그리는 듯 하지만 이 영화는 그렇게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습니다. 

영화 곳곳에 등장하는 개연성 없는 인물들과 그가 늘 분신 처럼 끌고 다니는 캐리어 가방, 괴이한 분장 모습등은 여러 가지 복선을 깔고 있는듯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렇다 할 단서를 제공하고 있진 않습니다. 오로지 관객들은 숀팬에 집중해야지만 어느 정도 이러저러 하겠구나 하고 알 수 있을 정도로 영화는 다소 어렵습니다.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는 '숀 팬이라는 배우를 위해 만들어졌다' 라는 말 보다 '숀 팬에 의해 완성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정도로 숀 팬의 무게감과 역할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안나오는 장면이 단 한 컷도 없으며 그와 상관 없는 장면이나 대사 또한 없습니다. 그렇다고 1인칭 시점에서 영화가 진행되지도 않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하고 다양한 곳을 누비며, 다양한 체험들을 하고 있지만 모든 것은 셰이언(숀팬)의 이야기가 됩니다.

 

그가 어째서 나이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지나친 화장을 하고 다니는지, 어리숙한 말투와 걸음걸이등이 화면에 비춰질때 그 모습은 어디가 모자란 사람 처럼 보인다기 보다 현실을 마주하지 못하고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생각과 대사는 모든 것을 통달한 어른 같은 말들을 툭툭 내뱉습니다.

 

 

진한 화장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굽이 높은 부츠를 신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치 나이 들기를 거부하는 어른의 모습 처럼 보여지는 것이 아니라 회괴 망측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것 처럼 보여집니다. 그가 한때 락 스타였을 무렵 그렇게 하고 다녔는지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때문에 과거의 자기 모습을 유지하고 싶은 심리라고 볼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는 자신의 노래 때문에 죽은 두 청년 때문에 괴로워 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을 접었기 때문에 오히려 과거에는 지금 같은 모습이 아니였는데 자신의 실제 모습을 감추고 싶고,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그런 화장과 립스틱을 바르고 다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에서 셰이언은 옷이 바뀌지 않고 늘 검은색으로만 입고 다니는데 그것 또한 자신의 내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가 검은 옷을 벗고 등장하는 유일한 컷은 바로 자신의 아내 제인(프란시스 맥도맨드) 과 수영장 안에서 맨손 라켓을 즐기는 장면입니다. 그가 유일하게 모든 번뇌로부터 해방되어 지는 아낌없이 주는 사랑 나무 같은 존재인 제인과 함께 있을때 그는 검은 옷이 아닌 운동복이나 팬티 차림으로 있기도 합니다. 맨손 라켓이라는 경기도 처음 보지만 재밌는 점은 수영장 안에서 그 경기를 한다는 점입니다. 마땅히 채워져 있어야 할 물은 없고 그 아래에서 아내와 맨손 라켓을 즐기는 셰이언.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봤는데 이 물 없는 수영장에 대한 의미를 생각해 보게 된 것은 그가 메리와 데즈몬드를 이어주기 위해 집으로 초대하는 상황이였습니다.

식사 도중 데즈몬드가 자신의 형제들이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을때 메리가 그 자리에 있지 못하고 뛰쳐나갑니다. 메리의 오빠 토니가 행방불명이 된 상황이였기에 민감한 부분이였죠. 그 후 셰이언과 데즈몬드가 바로 이 풀에 걸터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자신은 진정으로 메리를 사랑하는데 잘 안될 것 같다는 말을 할때 셰이언은 어눌하고 느리지만 이런 명 대사를 남기기도 했죠.

 

"그녀가 필요할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면 돼. 그럼 여자는 마음을 열어."   

 

이 후로 뭔가 우스꽝스럽고, 바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던 셰이언의 모습에서 계속해서 명 대사가 쏟아져 나옵니다. 그리고 그는 나치 전범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을 통해 자신의 겉모습과는 다르게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 과정은 자신의 치유 과정과도 일치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계속 들던 의문점은 개연성이 전혀 없는 등장 인물들입니다. 느닷없이 등장해 셰이언이 여행을 떠날때 닷지 차를 빌려주는 어니 레이, 우연히 들른 가계에서 만난 웨이트레스 레이첼. 그녀와 잠깐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집을 방문하고 아들과 기타를 치며 노래를 하는 그들에게 고무 풀장을 선물하고 떠나는 셰이언. 또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 선생님댁을 방문하고, 차에 돌아와 보니 알지도 못하는 낯선 남자가 차에 이미 타있고, 길거리 식당 같은 곳에서 만나 셰이언에게 나치 전범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주는 늙은 노인까지.   

 

도무지 개연성이라고는 찾아 보기 힘든 이런 등장 인물들을 통해 감독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유추해 볼 수 있는 상황들을 곳곳에 심어두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나치 전범을 찾았을때 그의 집에서 발견한 사진에는 레이첼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고, 역사 선생님 댁을 방문한 셰이언은 홀로코스트 [the Holocaust](독일인이 행한 유태인 대학살 사건) 에 대해 묻고, 결정적 단서를 제공한 노인에게는 셰이언이 먼저 다가가 자리에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는 장면등을 볼때 이 아무 개연성 없는 등장 인물들은 결국 셰이언이 의도적으로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특히 정말 뜬금 없이 셰이언의 차에 이미 앉아있다 사막 한가운데 내려서 유유히 사라져가는 남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을 하면 좋을지 곰곰히 생각해 봤습니다. 그가 등장해서 대사 한 마디 없이 차에서 내려 사라진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를 배경으로 유추해 보자면 뭔가 알지 못했던 짐을 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셰이언이 늘 끌고 다니던 캐리어

 

영화의 첫 장면 부터 끝날때까지, 아니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셰이언이 본 모습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분신 처럼 가지고 다니던 캐리어. 여행 도중에도 늘 끌고 다니고, 여행을 다니기 전에는 쇼핑 카트 같은 것을 늘 끌고 다니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계속 궁금했습니다. 늘 짐처럼 끌고 다니는 저 가방의 의미가 무엇일까? 그 가방 안을 단 한번도 보여주진 않습니다. 다만 전범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장면에서 화장품 가방을 챙기라는 대사가 나오긴 합니다. 그렇다면 그 캐리어에는 셰이언이 늘 하고 다니는 분장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는 의미가 되고, 그 캐리어가 사라진 장면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셰이언은 알래스카 같은 극한의 지역에 은둔해 있는 나치 전범을 찾아가 그를 죽이지 않고, 발가벗긴 체로 극한의 추위 속으로 내몰아 둔체 떠납니다.

 

 

그 장면이 끝나고 비춰진 셰이언의 모습은 더이상 펑키 스타일의 헤어도, 가부키 화장도 빨간 립스틱도 없는 평범한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늘 분신 처럼 끌고 다니던 캐리어도 없습니다.

아마 그 캐리어는 셰이언이 짊어지고 다녔을 마음의 무게와 그가 자신을 가리기 위해 늘 화장을 했던 것 처럼 그를 따라다니는 벗어 던지지 못한 어린 자아가 아니였나 생각해 봅니다. 꼬마 여자 애들이 소꼽장난을 할때 한손에는 자신만한 인형을 다른 한손에는 조그마한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던 모습을 상상해 보면 말이죠.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떠났던 다양한 과정들을 통해 비로서 자신 안에 갖혀 있던 진정한 자아를 꺼내어 든 셰이언. 그는 자신은 어렸을 적 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고 고백하지만 그의 아버지 지인은 그에게 아버지는 늘 너를 사랑했었다고 말해줍니다. 다소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숀팬의 걸음걸이, 표정, 웃음 소리, 눈빛을 통해 이해되고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였나 생각해 봅니다.

 

결코 쉽지 않은 드라마. 이 영화가 왜 범죄, 스릴러로 구분되어 있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지만 거기에 대해 왈가왈가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단 한 곳에서 밖에 상영을 하지 않는 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인 영화입니다. 

끝난 뒤 많은 생각을 갖게 하는 영화. '아버지를 위한 노래(This must be the place)' 였습니다.   

 

 

 

저는 건강한 리뷰문화를 만들기 위한 그린리뷰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