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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Culture

[영화추천] 에브리씽 머스트 고(Everything must go) - 씨네마 토크로 더 즐거웠던 시사회.

by voice_recipe 2012. 7. 11.

 

 

 

개요 코미디, 드라마 | 미국 | 97분 | 개봉 2012.07.12
감독 댄 러쉬
출연 윌 페렐(닉), 레베카 홀(사만다), 크리스토퍼 조던 월리스(케니)
등급 [국내] 15세 관람가 [해외] R

 

하나의 영화, 여러개의 다른 시선

씨네마 토크

 

영화나 음악등 예술 분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예술 분야는 대중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에서 평가됩니다. 나 혼자 좋아서 나만 간직하려고 만든 영화나 음악이 아니라면 자신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입장에서 쓰여진 모든 예술 활동들은 절대 다수의 대중적이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평가를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술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누구는 너무나 감동적으로 본 영화를 누구는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평가하기도 하고, 누구에게는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은 가사가 누구에게는 궁상 맞고 찌질한 독백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등 너무나도 다양하고 서로 다른 경험에 비추어 하나의 작품을 보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고해서 그 다름을 하나의 같음으로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다르기 때문에 같음도 존재하는 것이고 모두가 다 똑같을 수 없다는건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이죠.

 

요즘은 그런 예술 분야의 다양하고 다른 의견들을 조합하고 조율하여 비슷한 중간점을 찾아내는 작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 제가 참석했던 "씨네마 토크" 같은 자리가 바로 그런 자리 중 하나였습니다.

한 영화를 관객들이 함께 보고 영화가 끝난 뒤에 함께 영화에 대한 이야기나 궁금증등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는 영화 평론가나 예술 영화의 경우는 때에 따라서 심리학 교수나 음악 전문가등이 함께 초대되어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 이야기는 영화 소개가 끝난 후 다시 한번 언급하겠습니다. 어쨋든 오늘 시사회는 다른 여느 시사회보다는 더 즐거웠습니다.

 

힐링(Healing) 무비

 

 

오늘 시사회에 나온 영화는 CGV 무비꼴라쥬에서 준비한 『에브리씽 머스트 고(Everything must go)』 라는 작품입니다. 장르가 "코믹" 이라고 되어 있고 주인공도 코믹 연기의 달인이라는 윌 페렐이 등장하다보니 영화 자체가 웃기는 영화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코믹이라는 장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걸 알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코믹 연기의 대가 짐 캐리가 나온다고 그가 출연한 작품이 모두 웃긴 영화인건 아닌 것 처럼요.

 

이 영화는 희극 배우의 정극 연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코믹물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엔 다분히 제목부터 심오한 철학적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힐링 무비에 가깝습니다. 어쨋든 지금은 영화에 대한 이야기부터 할까요?

 

[About Movie..]

 

 

주인공인 닉(윌 페럴)은 알코올 중독자입니다. 세일즈 회사에서 부지점장까지 지내던 그가 단 한번의 실수로 회사에서 짤리게 됩니다. 바로 술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요.(나중에는 모든게 공갈 협박이였다는 것이 밝혀지지만 이미 때는 늦었죠.)

어쨋든 회사에서 짤리고 회사에서 고생했다는 감사의 표시로 선물한게 고작 스위스산 만능 칼이라니... 화가 난 닉은 지점장 차의 타이어에 선물 받은 칼로 펑크를 내고 도망나와 버립니다.

 

집으로 돌아와보니 마당에는 자신의 짐들이 널부러져 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현관문의 키는 맞지 않고, 뒷뜰의 번호키도 바뀌어 있습니다. 일이 잘못되었음을 눈치채고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보지만 받지 않는 아내.. 괘니 소동을 부렸다가는 경찰에 끌려가니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닉은 마당에 널부러진 자신의 의자에 앉아 멍하니 하루를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언제나 맥주 캔이 들려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주인공인 닉의 상황이 얼마나 한심하고 바닥을 치는지 알 수 있죠? 회사에서 짤리고 아내에게 이혼 통보를 받고, 아내는 집의 모든 열쇠를 바꾸고 집을 나갔고, 자신의 짐들은 마당에 널부러져 있는 상황에서 주인공인 닉은 그 어떤 행동을 취하지도 않고 그냥 계속 술만 마십니다. 술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술을 사오고 마셔대기를 반복합니다.

마당에 널부러져 있는 자신의 짐만큼이나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닉.

 

닉, 사만다, 케니.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서로를 만나다.

 

 

그런 상황에서 만나게 된 동네 꼬마 케니. 자전거를 타고 닉의 주위를 돌던 케니를 보고 처음에는 귀챦아 하지만 홀로 남겨진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케니를 알아보는 것 같습니다. 중반주에 닉과 케니는 마당에 널부러진 짐들을 판매할 수 있게끔 정리하고 가격을 매기고 판매하는 동업자가 되죠. 케니는 세일즈에 엄청난 재능을 보입니다. ^^

 

 

그리고 또 한사람. 이웃에 이사온 사만다. 그녀는 임산부였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나도 그의 남편은 보이지 않습니다. 닉은 그녀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가고 그녀 역시 자연스럽게 닉과 조금씩 친해져갑니다. 아마 서로의 처지가 비슷하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본거겠죠. 그녀와는 후반부에 서로의 아픈 곳을 건드리면서 감정 싸움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녀는 영화에서 스칼렛 요한슨과 정말 흡사한 외모로 보이더군요. 다른 사진을 보면 다른데 영화에서는 보는 내내 스칼렛 요한슨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소중한 사람으로 부터 분리되어 있는 그들

 

닉, 사만다, 케니. 이 캐릭터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습니다. 중년의 남자, 젊은 여성, 어린 꼬마. 느껴지는 것이 있으신가요? 비슷한 부분이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이 세 사람은 소중한 사람과 떨어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가장 힘들때 함께 있어야 할 아내와 떨어져 있는 닉, 임신한 상태에서 남편과 떨어져 있는 사만다, 부모와 함께 있어야 할 나이에 늘 혼자 있는 케니. 이들은 그들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기댈 수 있는 그늘들과 멀어져 있습니다.

 

이 세사람의 구성을 보면 가족이라는 모습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세사람이 함께하는 씬은 후반부에 마당 세일이 끝난 후 닉이 식사 제안을 할 때 딱 한번 함께하지만 그마저도 중요하게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즉 , 세사람이 가족이 될 것이라는 그런 얼토당토 않는 추측은 할 필요 없지만 이 세사람은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을 은연 중에 서로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지만 아무나 공감할 수 없는 영화

 

 

또 한번의 중요한 씨은 닉이 예전 졸업 앨범을 보다가 우연히 보게된 딜라일라라는 소녀가 쓴 글귀였습니다. 닉에 대한 호감을 표시하고 전화번호까지 남겨놨었지만 닉은 몇십년이 지난 후에 보게되었죠. 바로 가장 힘들고 누군가가 필요할 때 말이죠.

닉은 바로 예전 번호로 전화를 걸어 결국 현재 딜라일라가 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갑니다. 세월이 많이 흘러 모습도 많이 변했고 너무 오랫만의 재회에 어색한 두사람. 하지만 딜라일라는 잠시 머뭇거리다 닉을 저녁식사에 초대합니다.

 

그녀는 아마 닉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 중 학교 다닐때 위험에 처한 딜라일라를 닉이 도와주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였습니다. 물론 닉은 그런 일이 있었는지 기억조차 하지 못하지만..

 

여기서 잠깐 시사회가 끝난 뒤 씨네마 톡을 할 때 이야기를 하자면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이 좀 다르더군요. 평론가였던 김영진씨는 이 부분에서 딜라일라가 닉에게 "넌 좋은 아이야. 그건 변하지 않아." 라고 했던 말 때문에 닉이 수치심을 느껴 다시 술을 마시며 폭주를 한 것 같다고 했지만 저는 약간 의견이 다릅니다. 제가 느낀건 닉이 딜라일라를 몇십년만에 찾아 간건 대화 상대가 필요해서였습니다. 그녀가 자기를 아직도 좋아할꺼란 생각에 가진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20년 정도가 흘렀고 서로가 가정을 이루고 자녀가 있을 나이인데 20년전 글귀를 보고 아직도 이 아이가 나를 좋아하진 않을까 혹은 그 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가 궁금해서 찾아가진 않았을꺼란거죠. 딜라일라를 찾아가 만난 닉은 어색하지만 기쁨의 재회를 나눕니다. 자기가 불쑥 찾아와 당황했을 딜라일라를 배려해 그냥 가려고 하지만 딜라일라가 저녁에 초대합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어릴적에 알던 친구와 나이가 든 후 오랫만에 만나 어릴적 잊고 있었던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이 상황에서 닉이 왜 딜라일라와 헤어진 후 감정이 격해졌는지 이해가 갈겁니다. 닉은 딜라일라의 말에 상처를 받은 것이 아니라 예전에 용감하고 적극적이였던 자신의 모습과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소중한 사람으로부터 버림 받은 자신의 모습이 대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드는 자괴감은 정말 참기 힘들죠. 더군다나 혼자서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어쨋든 계속 흘러가고..

 

이 영화를 보고나면 아마 호불호가 또 많이 갈릴 것 같습니다. 좋았다는 사람과 지루하다는 사람으로 말이죠. 현재 이 영화를 봤는지 안봤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남겨놓은 평들을 읽으니 더 그런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 참 좋은 영화였습니다. 헐리웃 영화 같지 않은 느린 전개와 인물의 내면 표현에 집중하여 만들어진 영화라 더 마음에 듭니다. 주인공역을 맡았던 윌 페렐의 연기는 정말 좋았습니다. 코믹 배우인지 몰랐다면 왜 이런 배우를 몰랐었나 싶을 정도로 눈빛 연기나 감정 표현 연기가 좋았습니다. 사만다역을 맡았던 레베카 홀이나 케니역은 맡은 아역배우 크리스토퍼 조던 윌리스 역시 너무나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그들이 각자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할 만큼의 맺음만 하고 끝낸 부분도 좋습니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지금 힘든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강력한 힐링이 될만큼의 파워를 지닌 작품이라고는 못하겠습니다. 감동을 전하기에는 인물의 내면 상황 표현에 많이 집중을 하다보니 사람들이 원하는 행복하고 모든 것이 해결된 결말에 도달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닉처럼 더이상 떨어질 곳이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과 모든 것은 계속 해서 흘러가야 하기 때문에 멈춰있어서는 안된다는 말을 전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닉이 술이 너무 먹고 싶어 술을 사러 가야하는데 차를 압류 당하자 맞지도 않는 케니의 자전거를 빌려 타고 술을 사러 갔던 장면 처럼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멈춰있으면 안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하려면 이전 것들은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용기도 있어야겠죠?

 

시사회 후 씨네마 톡

 

 

영화가 끝난 뒤 씨네마 톡이 이루어졌습니다. 처음으로 참석해 보는 자리여서 무척 기대가 되더군요. 영화 평론가 김영진씨가 영화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었습니다. 원작이 1,600자 정도의 단편 소설이였다는 것이 놀랍더군요. 그 짧은 이야기를 97분 영화로 만든 감독도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ㅎㅎ 어쨋든 소설은 한 소년의 기억 속에 있던 이상한 아저씨에 대한 회상에서 시작되고 영화는 그 아저씨가 주인공이 되어 있었네요.

 

이런 저런 질문과 답변들이 오고가면서 같은 영화의 장면을 보고 이렇게 다르게 생각할 수 있구나 하고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위에 적었던 딜라일라와의 재회씬도 그렇고 많은 부분에서 제가 느꼈던 것과 다른 사람들과 느낀 점이 다른 점이 많더군요.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다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저도 간단한 질문 하나 던지는 수준에서 매듭졌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참 동양적이다 라는 느낌을 영화 곳곳에서 받았습니다. 닉이 마당에 호수를 만들어 잉어를 키우는 장면이나 사만다에게 자랑하면서 일본에서 비싸게 주고 데려온 녀석이라고 말하는 장면, 중국 음식을 시켜먹는 장면, 마지막에 닉이 집에 들어갔을 때 벽에 걸렸있던 동양화 작품들이며 닉이 팔려고 내놓은 장식용 도(刀) 등을 보면 곳곳에 동양적인 소품들이 정말 많이 쓰였습니다. 또 음악도 그렇습니다. 초반에 흘러나오는 컨츄리풍의 음악이 중후반부로 가면서 연주음악으로 바뀌는데 그 음악 역시 지극히 감성적인 코드를 지니고 있었고 영화 자체가 사건 중심이 아니라 인물의 내면 중심으로 많이 표현이 되고 있다는 점등에서 감독이 의도적으로 이런 동양적인 코드를 사용한 건지 궁금하더군요.

 

제목 역시 그랬습니다. 원작의 제목이 'Why don't you dance?' 인데 'Everything must go' 라는 철학적인 의미가 담긴 제목으로 바꿨다는 점도 그랬습니다. 타이틀은 그 영화를 대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독의 의도가 가장 많이 묻어 있다고 생각되어 지거든요.

평론가였던 김영진씨도 그 부분에 대해 공감을 한다는 말씀을 하시더군요.  

 

씨네마 톡이 끝나고 질문을 한 저를 비롯해 몇분에게 책 선물을 주셨습니다. 오~ 상당히 비싼 책이더군요. 김영진씨외 평론가 분들이 함께 집필한 책입니다. 즐겁게 이 책을 또 읽어봐야겠네요.

 

좋은 영화도 보고 즐거운 토크까지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이번 시사회는 무비꼴라쥬 라는 타이틀이 붙어져 있는 문화예술 서비스입니다. 기회가 되는데로 찾아가 봐야겠어요. 영화음악을 하는 와이프나 음악을 하는 저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더군요.

너무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