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관파천'.. 일본에 의해 왕후였던 명성왕후가 살해되고, 목숨마저 빼앗길 위험에서 가까스로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하여 목숨을 연명했던 조선의 왕. 연약하기 짝이 없고, 변덕스러우며 백성은 뒷전이고 돈에만 눈이 멀었다던 조선의 왕. 자신이 아끼던 사람들을 모두 잃어야만 했던 조선의 왕. 한 없이 초라한 그 이름 고종...
영화 '가비' 는 커피(Coffee) 의 우리나라식 고어(古語)로, '가비차' 또는 '양탕국' 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영화는 가비를 즐겼던 고종을 떠올리며, 어쩌면 우리나라 최초의 바리스타였을 따냐와 고종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따냐는 가상인물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건 가비도, 따냐도 아니고 고종이라는 비운의 왕이 갖었을 고뇌와 무게에 관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종의 마지막 가비(加比)
솔찍히 영화 초반 스크린을 박차고 영화관을 나오고 싶었다. 이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싶겠지만 영화가 시작되고 뭔가 잘못됐나 싶을 정도로 말도 안되는 사운드에 놀랐다. 배우들의 목소리는 무슨 확성기를 대고 대사를 치는듯 했고, 거기에 비해 음악은 너무 컸고, 하다만 CG 같은 영상들이며.. 도저히 완성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였다. 가장 거슬렸던 것은 영화 마지막까지 배우들의 톤.. 감독이 일부러 그렇게 확성기 같은 톤을 원했던거라면 도대체 무슨 의도인지 묻고 싶을 정도로 이해가 안갔다.
영화 스토리나 전개도 흡입력 있게 빠져들게 하지 못했다. '듬성 듬성' 이라는 표현이 가장 맞겠다. 하지만 고종이 등장하고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조금 달라졌다. 무엇보다 고종 역할을 맡은 '박희순' 씨의 내면 연기가 너무 좋았다. 실로 나약하고 한심한 왕이라는 고뇌와 번민을 너무나 잘 표현해서 그 덕분에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다.
솔찍히 두 주인공인 김소현씨와 주진모씨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고종에 대한 안타까움이 이 영화를 끝까지 보게 했다.
가비를 매우 즐겼던 고종. 그 고종이 한 대사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마디.
" 나는 가비의 쓴 맛이 좋다. 왕이 되고부터 무얼 먹어도 쓴 맛이 났다. 헌데 가비의 쓴 맛은 오히려 달게 느껴지는구나."
고종은 후에 결국은 독살을 당하게 된다. 그 모티브에서 시작된 영화. 가비..
영화의 평을 내리자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배우들의 말도 안되는 톤이며, 어색한 러시아 발음, 뭔가 2% 부족한... 몰입이 안되는 주연 배우들의 연기, 엉성한 CG, 실소를 머금게 하는 마지막 전쟁씬(이라고 해야하나? ㅎㅎ) 등등.. 그럼에도 기억에 남는 하나는 고종에 대한 재조명. 그저 나약하고 쓸모 없는 한나라의 왕이 아니라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백성과 나라를 살려 보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았던 조선의 왕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뭔가 스펙터클하거나 로맨스를 생각하거나 커피의 향을 느끼고 싶어 선택한 영화라면 실망한다. 조금만 참고 보자.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아 있을 한 불쌍한 임금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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